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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안동관광
안동시내코스 영호루
오래전부터 안동의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전북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한수(漢水)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리어져 왔다. 창건에 관한 문헌이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하여 건립되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천여년 동안 그 이름이 전통의 웅부안동(雄府安東)과 함께 하고 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서 왕이 이 곳 복주(福州)로 백관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왕은 피난중의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자주 남문밖에 우뚝 서 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밑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하였으며, 사장에서 활쏘기경기도 하였다고 한다. 난리가 평정되어 환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영호루를 잊지 못하여 친필로 한 映湖樓 3자가 쓰인 금자현판(金子懸板)을 보내어 누각에 달게 하였다고 한다. 그후 조선중기 명종(明宗) 2년 (1547년)의 대수(大水)로 누각은 유실(流失)되었으나 현판만은 김해(金海)까지 떠내려가서 발견되어 6년후인 1552년에 안동부사(安東府使) 안한준(安漢俊)이 중창(重創)하였으며, 영조(英祖) 51년(1775년)에 다시 홍수로 유실되어 부사 신맹빈(申孟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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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정보
  • 주소 안동시 강남로 187-5
  • 구분 안동시내코스
추가정보
오래전부터 안동의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전북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한수(漢水)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불리어져 왔다.
창건에 관한 문헌이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하여 건립되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천여년 동안 그 이름이 전통의 웅부안동(雄府安東)과 함께 하고 있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서 왕이 이 곳 복주(福州)로 백관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왕은 피난중의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자주 남문밖에 우뚝 서 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밑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하였으며, 사장에서 활쏘기경기도 하였다고 한다. 난리가 평정되어 환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영호루를 잊지 못하여 친필로 한 映湖樓 3자가 쓰인 금자현판(金子懸板)을 보내어 누각에 달게 하였다고 한다.
그후 조선중기 명종(明宗) 2년 (1547년)의 대수(大水)로 누각은 유실(流失)되었으나 현판만은 김해(金海)까지 떠내려가서 발견되어 6년후인 1552년에 안동부사(安東府使) 안한준(安漢俊)이 중창(重創)하였으며, 영조(英祖) 51년(1775년)에 다시 홍수로 유실되어 부사 신맹빈(申孟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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